No One Like You

든든한 오빠가 있어서

 

 

형제가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.
하지만, 주위에 오빠가 있는 친구들은 항상 말했다.
오빠랑은 절대 사이가 좋을 수가 없다고.
맨날 싸우고, 욕하고, 심지어 맞기도 한다고.




그런데 오빠는 달랐다.
그 누구보다 다정하고, 속이 깊고, 착하고, 똑똑하고, 배울 점이 많고, 든든한.
단 하나 뿐인 오빠였다.
(물론 어릴 때 공기 같이 하자고, 놀아달라고 하면 얼른 가서 책 읽으라고 했지만.)





중학교 가정 시간에 성교육을 받았었다.
여자중학교라서 성교육이 굉장히 '우회적으로' 진행되었는데,


"남자친구와 어두운 곳에 가면 안돼."
라고 했다.


나는 이 말이 이해되지 않아, 집에 와서 오빠에게 물어보기도 했다.
(아마 오빠는 동공지진이었을 것 같다.)
그만큼 나는 오빠에게 뭐든지 묻고, 털어놓고, 의지할 수 있었다.





오빠는 나만큼 활발하거나 활동적이진 않았지만, 깊이가 있는 사람이었다.
나만큼 부모님께 표현하진 않았지만, 듬직한 아들이었다.




오빠는 국사, 세계사 등 역사 뿐 아니라, 미술,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다.
그만큼 아는 것도 많고 지적인데, 동시에 매우 겸손했다.
사실 그래서 더 빛나는 사람이다.





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, 오빠가 입대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.
애써 웃으며 가는 오빠를 보며 펑펑 울었던 날.
그리고 오빠가 집에 처음 전화를 했을 때, 제일 먼저 남자친구가 생겼냐고 물어보던 게 생각이 난다.
군대에서 워낙 다양한 사람들을 보다보니,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.




오빠는 내 생일 때,
군대에서 그 소중하다던 별사탕을 하나도 먹지 않고 전부 모아서 내게 주었다.
화이트데이, 빼빼로데이, 항상 책상에 쪽지와 함께 놓여있던 작은 선물들.
오빠는 진심으로 나를 아끼고 있다는 걸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.





그런 오빠가 가족과 떨어져 미국에서 생활한 지도 2년이 넘었다.
오빠를 믿고 응원하기에 큰 걱정은 하지 않는다.
(무소식이 희소식)



 하지만 퇴근 후 피곤한 몸으로 씻으러 화장실에 갈 때,
매번 오빠 방 앞을 지날 때마다 너무 허전했다.
(집에서도 오빠의 빈자리를 채우려 나름 노력했지만, 역부족.)







오늘, 지은이네 친척들 가족과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.
귀여운 여자 아이들 세 명과 남자 아이, 오빠 한 명.
아이들과 끊임 없이 놀아주는 착한 남자 아이를 보는데,
오빠 생각이 났다.





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 놀아주고 맞춰주느랴 고생했을 오빠.
오빠 같은 오빠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.



오빠가 유난히 더 보고싶은 날이다.






 

DAY 6 IN New York.